<사진> 아직은, 목련의 봄.
제해만, <목련꽃>
목련꽃은 입이다.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입 가득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이다.
목련꽃은 웃음이다.
아무 욕심도 불평도 없이
얼굴 가득 담고 있는
아이들의 티없는 웃음이다.
5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이 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목련꽃을 먹고 싶어 졌다. 나는 하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예쁘게 먹을 생각 없이, 입을 크게 벌려 입술 가득 묻히며 먹는 모습을 너무나 사랑스러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가장 예쁘다. 보잘 것 없는 마른 나뭇가지가 힘겨워 보일 정도로 순수하게 탐스러운 꽃. 나는 벚꽃보다도 목련을 좋아한다.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는 입, 목련이 필 때 마다 이 시를 생각한다. 짧고, 단순하고, 직설적이어서 아름답다. 
광안리 뒤 쪽, 비치타운을 걷다 보면 벚꽃 나무가 늘어선 길과 마주칠 수 있다. 오래된 아파트와 그 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이 녹아있는 그 벚꽃길은, 단지 벚꽃놀이를 왔다는 느낌을 주지 않아서 좋아한다. 마치 우리 동네를 산책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하나, 둘 벚꽃 사진을 올리기에 산책 겸 벚꽃도 볼까 싶어서 그 길을 걸었는데 아직 벚꽃이 만개하지는 않았더라. 이틀, 따뜻한 비가 내렸으니 곧 빽빽히 피어 날테지. 2~3일 뒤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리려는데 흐드러질듯한 목련나무가 아파트 단지 안에 서 있는게 보였다. 나는 남의 아파트로 마치 주민인 척 들어가 나무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꽃나무의 꽃은, 막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질 때에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땅에 떨어진 꽃잎을 하나 주워서 다이어리에 끼워 넣었다.
동백이 피는 부산은, 이제 막 동백꽃이 지고 있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홀로 서 있는  동백나무 아래로 붉은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꽃잎을 보면서 왠지 화려한 울음, 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봄, 꽃들은 화려하게 울고있다. 
이창동 감독의 <시> 를 보았다. 이 영화를 개봉하자마자 보고 싶었는데, 그냥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다 보니 보지 못했었다. 영화는, 좋았다.
주인공 할머니를 유명한 배우를 쓰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영화의 모든 출연진들은 딱 한 명 - 기범이 아버지와 김용택, 황병승 시인을 제외하고는 한 번에 얼굴을 알아 볼 수 있는 배우가 없다. 그래서 영화에 집중하기 쉬웠다. 아는 이의 등장에 이번엔 연기를 어떻게 보여주려나 하는 기대감도 없고 그러니 실망도 없었기 때문에 왠지 인간극장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미장센을 예쁘게 꾸민 화면도 좋아하지만 생활이 밀접하게 느껴지는 화면도 좋아한다. 이 영화는 어느 한 구석도 꾸몄다는 기분이 들게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도 과장 된 것이 없다.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도 없고, 소리 한 번 지르는 사람도 없다. 격정보다 격정적인 담담함이 우리 모두의 삶 같아서 나는 자꾸만 그 장면 장면들을 생각하게 된다.
꽃 좋아하고, 이상한 소리 잘 하는 미자 할머니는 시인의 기질이 다분하다. 나는 이 소녀같은 할머니가 처음 등장하자 마자, 할머니가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조곤조곤, 조금 떨리는 듯한 목소리와 말할 때 마다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자꾸만 상처 받을 것만 같은 인상을 주었다. 아무도 이 아름다운 할머니를 상처주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상처를 준다. 나는 할머니가 걷는 것, 바라보는 것, 두르고 있는 스카프와 하얀 모자, 메모를 하는 노트까지도 슬펐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살구는 스스로 땅에 몸을 던진다. 깨어지고 발핀다. 다음 생을 위해.>
마지막엔 할머니의 자작시가 한 편 등장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쓴 이 짧은 메모가 가장 좋다. 
미자 할머니의 직업은 아마 중풍인 듯한 돈 많은 할아버지를 간병하는 것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그런 고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할머니는 늘 곱게 차려입고 시 강좌를 들으러 다니고 시 낭송회 모임에 나간다. 그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내 자신이 싫었다. 삶이 빠듯하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조차 사치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 대조적인 삶과 취미의 경계가 왜 그리 슬프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시를 쓰고 읽는데 많은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끊임없이 시를 쓰려하는,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아파서 슬펐다. 
우울한 봄에 보기 좋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꽃들이 슬퍼졌다. 진짜 좋은 영화였다. 더 이상 뭐라고 말하기 싫을만큼.

<사진> 아직은, 목련의 봄.

제해만, <목련꽃>

목련꽃은 입이다.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입 가득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이다.

목련꽃은 웃음이다.

아무 욕심도 불평도 없이

얼굴 가득 담고 있는

아이들의 티없는 웃음이다.

5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이 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목련꽃을 먹고 싶어 졌다. 나는 하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예쁘게 먹을 생각 없이, 입을 크게 벌려 입술 가득 묻히며 먹는 모습을 너무나 사랑스러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가장 예쁘다. 보잘 것 없는 마른 나뭇가지가 힘겨워 보일 정도로 순수하게 탐스러운 꽃. 나는 벚꽃보다도 목련을 좋아한다.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는 입, 목련이 필 때 마다 이 시를 생각한다. 짧고, 단순하고, 직설적이어서 아름답다. 

광안리 뒤 쪽, 비치타운을 걷다 보면 벚꽃 나무가 늘어선 길과 마주칠 수 있다. 오래된 아파트와 그 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이 녹아있는 그 벚꽃길은, 단지 벚꽃놀이를 왔다는 느낌을 주지 않아서 좋아한다. 마치 우리 동네를 산책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하나, 둘 벚꽃 사진을 올리기에 산책 겸 벚꽃도 볼까 싶어서 그 길을 걸었는데 아직 벚꽃이 만개하지는 않았더라. 이틀, 따뜻한 비가 내렸으니 곧 빽빽히 피어 날테지. 2~3일 뒤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리려는데 흐드러질듯한 목련나무가 아파트 단지 안에 서 있는게 보였다. 나는 남의 아파트로 마치 주민인 척 들어가 나무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꽃나무의 꽃은, 막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질 때에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땅에 떨어진 꽃잎을 하나 주워서 다이어리에 끼워 넣었다.

동백이 피는 부산은, 이제 막 동백꽃이 지고 있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홀로 서 있는  동백나무 아래로 붉은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꽃잎을 보면서 왠지 화려한 울음, 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봄, 꽃들은 화려하게 울고있다. 

이창동 감독의 <시> 를 보았다. 이 영화를 개봉하자마자 보고 싶었는데, 그냥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다 보니 보지 못했었다. 영화는, 좋았다.

주인공 할머니를 유명한 배우를 쓰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영화의 모든 출연진들은 딱 한 명 - 기범이 아버지와 김용택, 황병승 시인을 제외하고는 한 번에 얼굴을 알아 볼 수 있는 배우가 없다. 그래서 영화에 집중하기 쉬웠다. 아는 이의 등장에 이번엔 연기를 어떻게 보여주려나 하는 기대감도 없고 그러니 실망도 없었기 때문에 왠지 인간극장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미장센을 예쁘게 꾸민 화면도 좋아하지만 생활이 밀접하게 느껴지는 화면도 좋아한다. 이 영화는 어느 한 구석도 꾸몄다는 기분이 들게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도 과장 된 것이 없다.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도 없고, 소리 한 번 지르는 사람도 없다. 격정보다 격정적인 담담함이 우리 모두의 삶 같아서 나는 자꾸만 그 장면 장면들을 생각하게 된다.

꽃 좋아하고, 이상한 소리 잘 하는 미자 할머니는 시인의 기질이 다분하다. 나는 이 소녀같은 할머니가 처음 등장하자 마자, 할머니가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조곤조곤, 조금 떨리는 듯한 목소리와 말할 때 마다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자꾸만 상처 받을 것만 같은 인상을 주었다. 아무도 이 아름다운 할머니를 상처주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상처를 준다. 나는 할머니가 걷는 것, 바라보는 것, 두르고 있는 스카프와 하얀 모자, 메모를 하는 노트까지도 슬펐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살구는 스스로 땅에 몸을 던진다. 깨어지고 발핀다. 다음 생을 위해.>

마지막엔 할머니의 자작시가 한 편 등장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쓴 이 짧은 메모가 가장 좋다. 

미자 할머니의 직업은 아마 중풍인 듯한 돈 많은 할아버지를 간병하는 것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그런 고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할머니는 늘 곱게 차려입고 시 강좌를 들으러 다니고 시 낭송회 모임에 나간다. 그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내 자신이 싫었다. 삶이 빠듯하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조차 사치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 대조적인 삶과 취미의 경계가 왜 그리 슬프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시를 쓰고 읽는데 많은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끊임없이 시를 쓰려하는,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아파서 슬펐다. 

우울한 봄에 보기 좋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꽃들이 슬퍼졌다. 진짜 좋은 영화였다. 더 이상 뭐라고 말하기 싫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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